Carl Benedikt Frey, 『How Progress Ends』 올해 1월,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중국이 AI 마라톤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고리즘 효율성, 인프라 우위, 글로벌 사우스 장악력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² 비슷한 시각, 베이징의 한 컨퍼런스 홀에서 정반대 전망이 나왔다. 알리바바 AI 플랫폼 ‘통의천문’ 책임자 린쥔양(林俊暘)은 “중국이 이길 확률이 20%라고 해도 매우 낙관적이다”라고 말했다.³ 여기에 제3의 시선이 더해진다. ‘테크놀로지의 덫’으로 잘 알려진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교수는 최근 낸 『How Progress Ends』에서 미중 양국 모두 정체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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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빈곤 퇴치였다. 그러나 생산성은 한국,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낮은 소득 수준에서 정체된 모습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소수 부자들에 의한 정치(금권정치, Plutocracy)가 부상하고 있으며 기득권 체제가 다시 강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제목 “How progress ends”는 이러한 양국의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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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 교수의 핵심 통찰은 명료하다. 중국은 모방과 규모 확장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근본적 혁신에서는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미국은 혁신 역량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부 경직성으로 그 우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프레이 교수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이기고 있는가”가 아니라 “양국 모두 각자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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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분석에 따르면, 중앙집권화된 관료 시스템은 선진 기술을 추격하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경로를 탐색하는 혁신에는 부적합하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탈중앙화된 분산 체제가 필요하다. 특정 발전 단계에서 최적이었던 시스템은 기술 환경이 바뀌면 다음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부적합해지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쇠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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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프레이 교수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핵심 명제가 등장한다. 국가가 기술 최전선에 접근할수록 탈중앙화가 추가적 진보의 필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쟁을 회피하고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기득권의 이해관계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정체는 제도가 새로운 기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진보의 경로를 모색할 공간을 창출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 이면에는 대개 경쟁을 차단하려는 기득권의 조직적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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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속철도망 구축이나 제조업 규모화는 추격 성장 단계에서 중국 제도가 지닌 장점을 잘 보여준다. 중앙 조정 기구는 전국 단위의 신속한 자원 동원을 가능하게 하고, 지방 정부는 경쟁적으로 기술을 도입·개선하며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최근 DeepSeek 같은 AI 성과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기술 경로를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는 능력, 즉 “수입된 기술을 신속히 채택·개선·확장하는 역량”이 발현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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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레이 교수는 이 강점이 역설적으로 혁신의 장벽이 된다고 지적한다. 중국 경제가 기술 프론티어에 근접할수록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탐색을 요구하며 초기에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기에, 측정 가능한 목표치로 지방 간부를 평가·통제하는 기존 행정 시스템과 충돌한다. 실제로 지방정부의 특허 인센티브 정책은 ‘쓰레기 특허’의 양산으로 귀결되었다.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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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집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시진핑 집권 이후 의사결정 권한이 당 중앙과 시 주석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지방 관료들은 정책 혁신을 꺼리게 되었다. 혁신은 탐색을 요구하지만 탐색은 실패 가능성을 내포하고, 실패는 충성도 의심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관료들은 탐색적 실험보다 충성 과시를 선택하고, 정치·경제 권력의 융합은 혁신을 위축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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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부재는 구조적 취약성을 더욱 고착화한다. 미국이 독점금지법으로 시장 경쟁을 보호한 반면, 중국의 반독점법은 선별적으로 적용되며 정치적 통제의 도구로 작동한다. 예측 불가능한 법 집행 속에서 기업가들은 투자 보호를 위해 관료와의 연줄 구축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정경유착 구조(patronage economy)를 고착화 한다. 투명한 규칙 대신 후원관계가 자원 분배를 결정하면서 정치적 연결망 없는 혁신기업은 불리해지고 충성스러운 기업에 자원이 집중된다. 충성이 역량을 밀어내는 구조에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탐색과 혁신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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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 교수의 진단은 명확하다. “능력보다 충성이 우선시되는 체제에서는 국가의 혁신 역량이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정부 주도의 혁신 전략이 실패한 사례는 소련에 국한되지 않으며, 중국 역시 같은 제도적 함정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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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도적 강점은 역사적으로 “재산권과 자유무역의 헌법적 보장, 분권화된 혁신 생태계, 세계 인재 흡인력”에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이직의 자유와 수평적 지식 흐름이 만든 혁신의 집합 뇌(collective brain)였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이 역동성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기술 분야 ‘경업금지 조항’(non-compete clauses, 퇴사 후 경쟁 업체에서 일하거나 경쟁 사업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의 급증은 인재 이동을 제약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산업 4분의 3에서 집중도가 높아졌다. 집중은 악순환을 만든다. 대기업들은 경제력으로 정치적 지위를 구매하려 하고,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이 로비해야 한다. AI 시대에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 자동화 기술의 혜택은 규모와 자원을 가진 거대 기업에 집중되고, 혁신의 주역인 스타트업들은 계속 높아지는 진입 장벽에 직면한다. 프레이 교수는 AI 위험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AI의 위험성을 강조할수록 복잡한 규제 체계가 만들어지고, 규제 준수 비용은 자원이 풍부한 기존 대기업보다 신규 진입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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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부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무역보호주의도 혁신을 저해한다. H-1B 비자 제한은 “통계적으로 발명가·기업가가 될 확률이 높은” 이민자 유입을 막고, 값싼 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해 기존 기업 보호를 우선시한다. “미국 국내 시장이 경제적 충격은 덜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기존 기업의 권력을 강화해 지속적 진보를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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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경직성도 문제다. “권력 남용 방지를 위한 복잡한 견제와 균형 체계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신기술 채택과 필요한 개혁을 저해”한다. 프레이 교수는 핵심 긴장 관계를 지적한다. 강력한 재산권은 투자를 촉진하지만, 기술 대전환기에는 유연성 또한 필수적이다. 새로운 기술이 과거 기술을 대체할 때 기존 지대(rents)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기득권의 저항을 반복적으로 극복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특수 기업 이익이 미국의 역동성을 잠식하는 가운데, 과거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존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조직화된 이익집단을 형성하기에, 진보를 지속하고 현상 유지에 안주하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동원이 결정적이다. 바로 이 동원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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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적 관료제는 기술 추격에 유리하지만, 탈중앙화된 시스템은 새로운 기술 궤적 탐색에 적합하다. 문제는 한 단계에서 최적이었던 시스템이 다음 단계에는 부적합해진다는 점이다. 미중 양국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부적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추격 단계의 제도를 프론티어 혁신 체제로 전환하지 못한 채 더욱 중앙집권화되고 있다. 미국은 탈중앙화된 혁신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득권 집중과 제도적 교착으로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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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AI의 한계가 제도적 차이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일반화에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논리적 추론에도 취약하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새로운 알고리즘 패러다임을 찾는 탐색적 혁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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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탐색 공간을 축소하고 있다. AI 모델에 정부 심사를 의무화하고 “사회주의 핵심 가치 위반” 키워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도 자충수를 두고 있다. 과도한 반도체 규제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 자체의 혁신 생태계도 제약하고, 이민 제한은 “통계적으로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은” 인재 유입을 막는다. 국내 산업 집중이 심화되는 시기에 외국 인재와 경쟁이 쇄신의 원천이 되어야 하지만, 미국은 양측 모두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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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양국 모두 자국 제도의 역설에 갇혀 있다. 중국은 중앙집권 시스템이 프론티어 혁신에 부적합한데도 더욱 집권화하고, 미국은 탈중앙화 시스템의 강점을 기득권 보호로 잠식당하고 있다. 미중 AI 경쟁에 대한 앞의 세 가지 시선은 서로 다른 시간 지평을 포착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단기 기술 성과를, 중국 업계 전문가는 중기 기술 격차를, 프레이 교수는 장기 제도-기술 부정합을 본다. 이들은 모순이 아니라 복합 현실의 다층적 단면이다. 진정한 질문은 어느 시스템이 자기모순을 먼저 극복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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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l Benedikt Frey, 『How Progress Ends: Technology, Innovation and the Fate of Nations』 (Princeton &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5)
4) 2023년 미국의 해외 로열티 수입은 1,260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중국은 110억 달러에 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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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연말,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 기술 잡지 WIRED는 “So Long, GPT-5. Hello, Qwen”이라는 표지를 메인 화면에 내걸었다. OpenAI가 기술 비공개 노선을 고수하는 것과 달리, 알리바바의 통의천문(Qwen)은 오픈소스 전략으로 글로벌 AI 경쟁 판도의 전환을 예고했다. OpenAI와 Qwen의 상반된 전략은 미중 AI 경쟁이 기술 노선의 차이라기보다 제도적 조건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OpenAI는 기술 비공개와 독점적 우위로 성과를 쌓는 전략을 택했고, Qwen은 오픈소스로 응용 확산과 생태계 구축을 우선시한다. 프레이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전자는 기득권 강화를 통한 단기 안정 전략이고, 후자는 탐색 공간을 넓혀 장기 혁신 가능성을 모색하는 선택이다. 역설적으로 중국 기업이 더 개방적 전략을 택한 것은, 자율적 실험이 제약된 제도 환경에서 외부 생태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적 압박을 반영한다.
☑️ 중국의 거국적 AI 육성은 단기간에 기업 수와 응용 영역을 급격히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패를 전제로 한 탐색적 혁신을 허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성과 입증 압박 속에서 검증된 모델에만 자원이 몰리고, 그 결과 많은 중국 AI 스타트업은 더 나은 경영 환경과 실험의 자유를 찾아 해외로 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탈중앙화된 혁신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산업 집중과 독점 강화, 규제 비용 누적으로 그 역동성이 서서히 잠식되고 있다. 결국 중국은 추격에 최적화된 제도가 프론티어 단계에서 경직되고 있고, 미국은 탐색에 유리했던 제도가 기득권 보호에 포획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이런 상황에서 미중 AI 경쟁은 승패를 가르는 단순한 기술 경주라기 보다, 각자의 제도와 문명적 접근이 지닌 한계가 기술 정체와 전략적 오판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목적과 이상을 먼저 정하는 방식으로 자원 집중과 속도를 확보했지만, 그만큼 탐색과 실패를 제도적으로 제약한다. 미국은 분산된 실험과 경쟁을 통해 혁신을 쌓아왔지만, 독점과 기득권 포획이 누적되면서 그 개방성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 문제는 양측 모두 자신의 문명적 강점을 키우는 방향이 아니라, 각자의 약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기보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향 자체가 제도적 관성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미중 AI 경쟁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동서양이 각기 쌓아온 제도적 장점과 한계를 재조합하지 않으면 기술 문명 자체가 정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 단계의 기술은 어느 한 체제의 논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기술 문명에 대해 어떤 상상을 펼쳐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공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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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태재미래전략연구원 media@fcinst.org 서울특별시 종로구 백석동길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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