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y Blair Institute for Global Change, Leading in the Age.. 우리는 지금 ‘AI 기술혁명’이 바꿔가는 세상의 입구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출구 바깥은 흐릿하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가야 하는가? 기술 개발을 이끌어가는 기업에 맡기면 될 일인가? 아닐 것이다. 변화의 폭은 훨씬 크고 깊을 것이다. 산업 지도, 일자리, 과학연구는 물론 국가 안보, 노동과 복지 전반에도 심대한 변화가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치와 산업 전반에서의 기술권력 집중, 사이버 공격, 새로운 생물학적 위협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큰 변화를 조망하고 사회를 재조직해 나가야 할 정부는 산업혁명 시대 방식 그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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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이끄는 토니블레어연구소(TBI)가 2026년 9월 발간한 보고서 『Leading in the Age of AI: How to build an AI-Enabled State』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블레어 전 총리는 서문에서 산업혁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세상을 바꿨다면, AI는 10년 안에 그만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산업혁명기에 새 기술과 그에 맞는 제도를 받아들인 일본과 독일은 번영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갈수록 뒤처졌던 것처럼, AI의 여러 위험 못지않게 AI를 받아들이지 못해 뒤쳐지는 위험도 무겁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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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AI 시대에 앞서가는 국가를 가르는 기준으로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국가 역량으로 바꾸는 능력을 꼽고, 이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새로 짠 ‘재설계된 정부(Reimagined State)’를 제안한다. 보고서는 “기술혁명을 국가에 흡수하지 못할 경우 심오하고 복합적인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며 “유일한 길은 AI를 활용해 국가 자체의 운영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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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싱가포르·에스토니아의 공통점 ‘지도자의 통찰, 준비된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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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최근 수십년간 축적되어 온 신뢰의 위기를 지적한다. OECD 조사에서 자국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3%에 달했다.² 신뢰도는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이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신이 특정 정책이나 정당, 정치인이 아니라 시스템 역량 자체를 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문제의 배경에는 국가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역량이 조직된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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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를 세계적 현상으로 본다. 여기에 일부 지역에서는 AI에 대한 반발, 이른바 ‘테크래시(Techlash)’까지 커지고 있어 AI 대응을 미루는 편이 당장은 정치적으로 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대가가 국가의 안정과 안보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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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최근 수십년 동안 국가 시스템 개편으로 현상을 타파한 사례로 한국과 싱가포르, 에스토니아를 든다. 한국은 1960년대 초 경제기획원을 세워 경제 계획과 예산, 통계 기능을 한곳에 모으고 경제 전략과 정부 전반의 실행을 연계한 경험이 있다. 싱가포르의 주택개발청과 경제개발청,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신원 제도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세 나라 모두 지도자가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정부 조직을 집중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고서는 이를 ‘지도자의 통찰, 준비된 기관’으로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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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을 바탕으로, 국가의 역량은 정부가 사회에 관한 정보를 얼마나 폭넓게 파악하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수집·처리해 실행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컴퓨터와 인터넷, 클라우드 등의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가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속도가 늘었고, 그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넓어졌다. AI도 같은 흐름에 있지만 그 영향은 훨씬 크다. 보고서는 “상당한 제도적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며 “경계를 넘어 전체를 조망하고 즉각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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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기술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넓혀 왔다. 출처: TBI(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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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정보를 처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던 시대에 형성된 ‘산업형 정부’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빠르고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AI 시대에는 이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두 모델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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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델을 가르는 핵심은 사람의 역할이다. AI는 정책 목표들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어도 어느 쪽을 택할지는 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료 수집과 분석은 AI에 맡기고, 사람은 협상과 설득, 책임이 따르는 판단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확산될수록 사람의 판단이나 국민의 신뢰처럼 AI가 대신할 수 없는 역량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기관은 그대로 유지하되,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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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 곳으로 이른바 ‘정부 컨트롤타워’를 꼽는다. 보고서의 표현으로는 ‘정부 중심부(Centre of government)’로, 영국 총리실이나 미국 백악관처럼 지도자를 보좌하며 정부 전체의 우선순위를 조율하는 조직이다. 각 부처는 업무에 AI를 도입할 수 있지만, 부처 간 지식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공통 규칙과 시스템은 혼자 만들 수 없다. 결국 중심부가 나서지 않으면 각 부처가 AI를 잘 활용하더라도 정부 전체는 제각기 움직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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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컨트롤타워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기 보고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진행 상황을 살피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즉시 계획을 수정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정책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보여 주고, 부처 간 책임이 비어 있는 지점이나 이상 신호를 찾아 알려 줄 수 있다. 물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할 일이다. 다음으로, 온라인 신원 확인이나 부처 간 정보 공유처럼 개별 부처가 구축하기 어려운 공통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보고서는 컨트롤타워가 각 부처의 AI 활용 방식까지 일일이 정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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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정부 운영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일을 3대 과제와 8개 권고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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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조직을 바꾸는 일이다. 전문성을 지키는 안정적인 기관은 그대로 두되, 필요할 때 만들고 없앨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함께 운영하라는 것이다. 지도자의 관심과 자원도 소수의 핵심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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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디지털 기반을 다지는 일로, 크게 세 가지다. 부처끼리 정보를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공통 시스템, 정부가 쌓아 온 경험과 기록을 한곳에 모아 누구나 찾아 쓸 수 있게 하는 체계, 그리고 특정 AI 업체에 문제가 생겨도 정부 업무가 멈추지 않도록 대비하는 체계다. 이 가운데 특히 강조하는 것은 기록이다. 지금은 담당 공무원이 자리를 옮기면 그 사람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까지 함께 사라지기 쉽다. 여기에 AI가 만든 요약본을 그대로 옮겨 쓰는 일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누군가의 해석이었던 내용이 어느새 사실처럼 굳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보고서는 어떤 결정을 왜 내렸고 그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나중에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길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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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AI를 실제로 정부 업무에 들이는 일이다. 지금은 한 부처에서 AI 시범사업이 성공해도 다른 부처로 잘 퍼지지 않고, 비슷한 AI 서비스를 부처마다 따로 사들이는 경우가 많다. 보고서는 성공한 사업을 정부 전체로 넓히는 공통 절차를 만들고, AI를 구매할 때부터 다른 시스템과 연결해 쓸 수 있는지 따져 보라고 권한다. 새 정책을 내놓기 전에 그 효과를 AI로 미리 예측하고 검토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출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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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I에 맡길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를 둔다. 사람 대신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에게는 미리 정해 둔 일만 맡기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을 먼저 추진할지와 같이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결정은 반드시 사람이 내려야 한다. 또 정부가 시민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면, 당사자가 그 이유를 알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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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정책 발표만 거듭하던 정부가 실행과 개선을 반복하며 성과를 만들어 내는 정부로 바뀐다면 시민의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AI 시대에 맞춰 정부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산업화 시대의 제도로는 시민이 기대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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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재설계된 정부는 더 진화된 산업국가도, 기계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포스트 관료주의 국가도 아니다”라며 “인간 역량의 집중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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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ECD, “Results of the 2025 OECD Survey on Drivers of Trust in Public Institutions” (20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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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의 디지털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과 AI 전환은 차원이 다르다. 현재 정부에는 대통령 직속 AI위원회가 있고 AI수석도 있다. 실무는 과기부가 한다. 블레어연구소가 말하는 컨트롤타워는 설치된 셈이다. 그렇다고 정부조직에 AI 역량을 내재화하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1960년대 초 시작해 60여년이 된 산업화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는 수준의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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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가 국가 전환의 모범으로 가장 먼저 한국을 꼽은 것처럼, 한국은 흩어진 정부를 하나의 목표로 묶어 본 경험이 있다. 개발 시기 경제기획원은 계획과 예산, 통계를 한곳에 모아 경제 도약을 이끌었다. 다만 당시의 성과는 권한이 집중된 체제에서 나왔던 만큼, 권한이 국회와 지방정부, 독립 기관으로 분산된 지금은 같은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렵다. 제도적 경계를 넘어 전체를 조망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행동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과거의 성공 경험을 민주적 방식으로 다시 살려 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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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자동 처분에 ‘왜’를 물을 수 있는 길도 필요하다. 한국은 2024년 3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AI 등 자동화된 시스템의 결정이 개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거부하거나 설명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정작 사람의 판단 없이 시스템이 자동으로 내리는 정부의 행정 처분은 이 권리에서 빠져 있다. 기업의 자동화된 결정에는 이유를 물을 수 있지만 국가의 자동 처분에는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셈이다. 물론 행정 심판이나 행정소송 같은 불복 절차는 있다. 다만 정부가 행정에 AI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될수록, 시민이 그 결정의 이유를 쉽게 묻고 확인할 수 있는 길도 함께 넓혀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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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한국 정부는 무엇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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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태재미래전략연구원 media@fcinst.org 서울특별시 종로구 백석동길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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