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ilateral Dilemma: Global Nuclear Order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핵 위협을 가했고, 한때는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결과”를 경고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핵 질서와 핵 금기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실제로 전쟁 내내 러시아 군 지휘관들과 정치인들은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인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러시아 국영 방송에서는 NATO 주요국 수도들이 핵 공격으로 잿더미가 되는 시뮬레이션 영상까지 방영했다.² 심지어 지난 6월 초, 러시아 측 휴전 협상 대표는 “우크라이나가 NATO와 함께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되찾으려 한다면, 이는 지구 종말을 부를 핵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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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인 매튜 번(Matthew Bunn)을 포함한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높은 10~20% 수준”으로 추정하며, 과연 ‘핵 금기’라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³ 러시아의 핵 위협이 3국의 개입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목적에서일 수 있지만, 노골적 핵 위협 그 자체로 전후 세계질서를 흔들어놓을 수 있었다. ‘핵’은 다시 국제 여론의 최전선에 등장했다. 우리는 다시 핵 공포의 시대에 들어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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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스티븐 헤르초크(Stephen Herzog) 교수는 이 위기를 파국의 신호로 보지 않는다. 헤르초크는 세계 평화와 갈등 연구를 다루는 권위 있는 학술지인 〈Peace Review〉에 2024년 9월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글로벌 핵 질서가 지닌 구조적 복원력에 주목하며 ▲핵확산 방지 ▲군비 통제 ▲핵 사용 억제라는 세 가지 핵심 기능을 토대로 현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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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결론은 분명하다. 핵 질서는 흔들리고 있으나, 결코 붕괴한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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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Timothy David Snyder)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세계 각국이 “핵무기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⁴ 실제로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처럼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국가들이 외세의 침공을 받은 사례는 핵 억지력 없이도 국가의 생존과 주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을 낳았다. 북한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붕괴(2003년)를 목격하고 핵실험(2006년)을 감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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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헤르초크는 이러한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그 구조적 불평등과 강대국의 이행 위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과적으로 핵확산을 억제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NPT에서 이탈한 국가는 없으며, 핵무기를 새롭게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국가도 등장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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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태도다. 이들 중 다수는 오히려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서명하며, TPNW와 NPT의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안보는 ‘핵 보유를 통한 억지력’이 아니라 ‘군축’과 ‘핵 비확산’에 기반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유효함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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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영토를 놓고 다투는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무기고를 현대화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전 세계 군비 수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핵 질서 전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1만 2,121기(추정)의 핵탄두 가운데 87%를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다.⁵ 이처럼 양극화된 핵무기 구조 속에서, 군비통제 협정의 복원은 핵 질서 유지를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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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러 관계는 날이 갈수록 냉각되고, 핵 군축 협정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양국 간 마지막 핵 통제 장치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은 2026년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러시아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 비준을 공식 철회했다. 헤르초크는 과거 냉전 시기 안정의 토대였던 군비통제 협정들이 이제는 미·러 간 불신과 대립 속에 ‘인질’로 전락했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가 군비통제의 현실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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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초크는 희망의 가능성을 본다.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 에이블 아처 훈련 등 냉전기의 사례들을 상기시킨다.⁶ 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극에 달했던 순간에도 군비통제는 오히려 절실함을 자산 삼아 진전을 이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후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로 중 하나가 군축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협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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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금기: 시험대에 올랐지만,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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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초크는 두 가지 측면을 본다. 첫째, 핵 위협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억지(deterrence) 전략의 본질적 구성 요소이며, 전통적 군사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냉전 이후 수십 년간 핵 위협과 마주할 일이 없었던 세대에게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전략의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관심이 다시 집중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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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의 핵 위협 빈도는 줄어들었다. 위협이 실효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경 지역을 점령하기까지 했다. 핵 위협이 행동을 억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무력화한 측면이 있다. 푸틴이 설정한 ‘레드라인’이 어디인지조차 불분명해졌고, 다수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은 실질적으로 핵 위협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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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금기의 기반이 흔들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붕괴한 것은 아니다. 핵 사용 위험은 분명 높아졌지만, 그것이 임박한 현실은 아닌 만큼 균형 잡힌 판단이 요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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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균열은 있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은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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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볼 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핵 질서를 붕괴시키지도,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넣지도 않았다. 각국은 핵 개발에 몰두하지 않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이탈하려는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중심으로 한 제도들은 여전히 작동 중이며, 국가들의 핵무장 시도를 억제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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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군비통제 체제는 전쟁 이후 뚜렷이 약화하였고, 회복에는 시간과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헤르초크는 현재의 핵 질서를 “불완전하지만 붕괴하지 않은 질서”로 평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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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짜 위협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핵 질서를 뒤흔드는 근본 요인은 미국·중국·러시아 3국 간의 구조적 패권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그 파장은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더 이상 임시방편의 위기관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강대국 간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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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초크가 제시한 해법은 분명하다. 세 강대국은 핵확산을 방지하고, 핵무기를 감축하며, 핵 사용 금기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의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손을 잡지 않는다면, 미래의 핵 질서는 지금보다 훨씬 위태로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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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질서, 당연한 전제 아니다. 국제 핵 질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높은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같은 안정성이 앞으로도 자동으로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핵 질서의 지속가능성은 강대국들의 책임 있는 태도와 노력에 달려 있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이 세 국가는 핵확산을 방지하고, 핵무기를 감축하며, 핵 사용 금기를 재확인하는 데 있어 공동의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이들의 실질적인 참여와 협력이 없다면 현재의 핵 질서는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 국지적 무력 충돌은 핵 질서를 취약하게 만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핵 질서의 균열을 드러낸 사례다. 비록 핵 질서가 완전히 붕괴하지는 않았지만, 군비통제 체제는 약화됐고 핵 위협의 수위도 전례 없이 높아졌다. 이 흐름은 하나의 경고다. 지정학적 긴장과 무력 충돌은 핵 질서를 지탱하는 제도와 규범의 한계를 시험하며, 때로는 체제를 더욱 위태로운 경계로 몰아넣는다. 이스라엘-이란 갈등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될 수 있다. 특히 사실상 핵무장국으로 간주되는 이스라엘과, 핵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란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핵 질서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한다.
☑️ 핵 위협은 억지 전략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위험한 균열이다. 헤르초크는 핵 억지 전략의 핵심 요소인 핵 위협이 반복될수록 그 효용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 위협이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핵무기는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지금까지 유지돼 온 핵 금기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 핵 위협은 단순한 수사적 혹은 심리적 도구가 아니라, 핵 질서를 서서히 침식시키는 지속적인 균열로 작용한다.
☑️ 핵확산 시도는 무력 충돌, 심지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81년 이스라엘의 이라크 핵시설 선제 타격, 그리고 최근의 이스라엘-이란 갈등 중 미국이 감행한 이란 내 주요 핵시설 3곳 폭격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들은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이미 입증됐다. 이런 행동은 갈등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고조시키며 더 큰 충돌이나 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핵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핵 보유의 유인과 필요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핵질서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우리는 핵 질서를 지키려는 쪽에 서 있나요, 아니면 파국을 방관하는 쪽에 가까운가요? 이 질문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통찰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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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태재미래전략연구원 media@fcinst.org 서울특별시 종로구 백석동길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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